죽음이 멸망하는 날


가족이 소중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난 몇 주 동안만큼 그것을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올해 100세 되신 어머니가 계십니다. 어머니는 저뿐만 아니라 이 세상 누구에게나 특별한 존재입니다. 아무 수식어를 쓰지 않아도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올 만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도 이제 세월 앞에 몸이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느니라.”라고 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본향과 영생을 소망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그동안 사랑했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이 죽음이므로 우리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절대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에서는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 곧 그리스도의 적이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멸망시키면, 다시는 사망이 우리를 위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망만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음부도 사망과 함께 불 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계시록 20장 14절에 나옵니다.

사망과 음부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담 이래로 죽은 모든 사람이 음부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음부를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스올,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하데스라고 부릅니다. 우리 주님은 사망과 음부를 불 못에 던지실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은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말씀이지만, 음부를 죽음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시면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 몸은 나이가 들면서 늙고 병이 듭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을 가리켜 장막 곧 텐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육신의 장막 곧 우리 몸이 낡고 결국에는 무너질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영원한 집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몸 곧 육신의 장막은 세월 속에 낡아지면서 결국에는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 죽음을 우리 모두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처럼 죽기를 무서워하는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방법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히브리서 2장 14절과 15절에 나오는데, 새 번역으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좋은 소식 곧 복음입니다.

왕의 식탁에 초대받은 사람
어쩌다 비틀거려도
더 향기로운 정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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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의 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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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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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짜장면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아시는 열두 가지
성경의 중심에 위치한 구절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내 이웃의 사르밧 과부
도르가의 바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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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락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
두 아들의 어머니 살로메
"나의 아들, 나의 구세주"
"딸아, 평안히 가라"
요엘서의 메뚜기떼
"월삭이 언제 지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