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평안히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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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사람의 이름은 모르지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이렇게 세 복음서에 불치의 병에 걸린 한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병든 사람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의사 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43절부터 48절까지 읽겠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의사 누가는 이 가련한 여인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주님께는 어떤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이것은 누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는지 주님이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닙니다. 범죄한 아담에게도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모르셨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질문은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오실 때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주님이 이 가련한 여인을 ”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가족 간에 쓰는 용어입니다. 그 당시 유대의 정결법에 따르면, 혈우병을 앓는 여인은 부정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공동체와는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에 걸쳐 코로나 때문에 격리가 어떤 것인지 체험해 본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2주간만 격리한 게 아닙니다. 율법에 나오는 정결법에 따라 이 여인은 12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았을 것입니다. 그 가련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딸아“라고 부르셨습니다. “딸아” 이 얼마나 얼마나 듣고 싶은 단어였을까요? 우리가 그 현장을 볼 수는 없지만, 이 가련한 여인은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틀림없이 눈물을 쏟았을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 여인의 이야기 앞뒤 문맥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이 여인의 믿음이 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 여인처럼 부정한 사람은 군중 앞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 다가가 그의 옷을 만진 것은 그녀의 절박함과 용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녀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내일을 예견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도 언어적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혈우병 앓는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족과 다시 화평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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