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의 대속

podcast (듣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유월절은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입니다. 유월절은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그날 이집트의 장자와 동물의 처음 난 것이 모두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집트의 고센 땅에 살았지만, 그들의 장자와 동물의 첫 새끼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집트인들보다 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도 마땅히 죽어야 했지만, 유월절 어린양이 그들을 대신해 희생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와 동물의 처음 난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소나 양은 수컷 가운데 처음 난 것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희생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서 난 첫 장자도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소나 양처럼 사람이 희생제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대신 양으로 대속해야 했습니다. 양을 희생제물로 바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로 대신 할 수 있었습니다.

소나 양은 되새김질하고 굽이 갈라져 있는 깨끗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희생제물이 될 수 있지만, 나귀는 달랐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나귀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그러므로 나귀의 처음 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희생제물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귀를 대신해 어린 양이 희생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귀의 주인이 어린 양이 아까워 그것을 나귀를 위해 대속하지 않으려면 그 나귀의 목을 꺾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출애굽기 34장 20절에 나옵니다.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나귀의 목을 꺾는 것은 그 나귀를 죽이라는 뜻입니다.

욥기 11장 12절을 보면 우리 사람을 가리켜 나귀 새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우리는 모두 나귀처럼 부정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 앞에 섰던 선지자 이사야가 깨달았습니다. 이사야 6장 5절에 나오는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귀의 삶과 죽음이 어린 양에게 달려 있듯이 우리의 삶과 죽음도 유월절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달려 있습니다. 부정한 나귀를 대속하려면 어린양의 죽음이 필요하듯 우리에게도 어린양의 대속이 필요합니다.

일찍이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린양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 어린양의 대속을 거절하면 나귀처럼 목이 꺾여야 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형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것이 기쁜 소식이고 복음입니다.

호세아의 아내
아름다운 이별
예수님 족보의 놀라움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법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아버지의 짜장면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아시는 열두 가지
성경의 중심에 위치한 구절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내 이웃의 사르밧 과부
도르가의 바느질
무엇이 우리를 강권하는가?
궁정을 떠난 요안나 이야기
절망의 나락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
두 아들의 어머니 살로메
"나의 아들, 나의 구세주"
"딸아, 평안히 가라"
요엘서의 메뚜기떼
"월삭이 언제 지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