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들, 나의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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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행하신 여러 기적 가운데 귀신을 쫓아낸 이야기가 마가복음 3장에 나옵니다. 이를 보고 그 당시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두목인 바알세블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 비난은 사실 스스로 논리적 모순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귀신이 귀신을 상대로 서로 싸우면 스스로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과 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언뜻 듣기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는 불경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제는 예수에게 자신이 그의 어머니라고만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부터 그에 관한 말을 항상 마음에 새겨 둔 마리아는 이번에도 예수의 말을 마음에 새겨 두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우리가 마리아를 마지막으로 보는 때는 예수의 십자가 곁에서입니다. 육신의 어머니로서 사랑하는 아들이 못 박힌 모습을 보는 마리아의 고통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칼이 그의 마음을 찌르듯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숭배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교회도 있지만, 마리아는 어느 여인과 다를바 없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럼, 마리아와 예수님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요한복음 19장 26절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이 이전에도 육신의 부모를 받들어 섬겼듯이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은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들어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마리아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교회가 세워진 후,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찢긴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뗄 때,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린 주님의 피를 기념하는 포도나무에서 난 잔을 마실 때 마리아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틀림없이 눈에 가득 눈물 고인 모습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낳고 기른 내 아들이었지만,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나의 구세주임을 감격해하면서 눈물로 참여했을 것 같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나의 구세주” 그렇게 고백하고 믿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을 받았을 때, 장차 자기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 줄을 알았을까요?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이 아이 때문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하리라.”는 시므온의 말을 마리아는 평생 마음에 간직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고통이라도 감내할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절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격려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일서 5장 4절 말씀처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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