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직 살아 있을 때 뵙고 싶습니다." 이것은 요양병원에서 암 투병을 하고 계시던 어느 분이 지난여름 저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입니다.
그분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기 전 함께 식사했던 것이 4년 전이었는데, 그 후로는 코로나 때문에 전화로만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기 암으로 투병하시는 분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보낸 메시지 같아서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다른 모든 일을 미루고 왕복 200km가 넘는 요양병원으로 그분을 뵈러 갔습니다. 신속 항원 검사를 통해 코로나 음성임을 확인받은 저에게 주어진 면회 시간은 단 10분이었습니다.
병색이 완연했지만, 온화한 미소를 띠면서 그분은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주님을 알게 해 주시고, 소망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 그동안 누린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기억하는 추억을 이야기했습니다. 10분이 끝나갈 즈음, 그분은 기도할 때 잡은 제 손에 작은 봉투 하나를 쥐여주었습니다. 눈에 한가득 눈물이 고였지만, 평안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는 길에 꼭 식당에 들러 드시고 가세요. 우리가 좋아했던 불고기 드실 만큼 넣지 못해 죄송해요."
항상 대접하기를 좋아한 분이셨는데, 이제는 함께 나가 식사할 수 없으니 혼자라도 드시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봉투에 넣은 금액은 요양병원에서 그분이 갖고 계셨던 돈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호스피스 병동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른 방에서 어느 할머니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과 저주였습니다. 그분의 자세한 사정을 저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분도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용서를 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죽음을 앞둔 두 분의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분은 감사와 평안한 마음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소망 가운데 지내고 계셨지만, 다른 분은 “평화에 관한 일”을 모르는 분 같았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장차 예루살렘 성이 멸망할 것을 아시고 성을 보고 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에 관한 일(the things that make for peace)”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주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분이 부탁하신 대로 식당에 들렀습니다. 혼자 먹는 밥을 요즘 “혼밥”이라고 하는데, 그날은 그분이 미소를 머금고 제 앞에 앉아 계시는 듯했습니다.
지난여름 요양병원에서 만났던 그분은 이 세상에 이제는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잠시 머무는 이 세상에서 그분을 다시 뵐 수 없지만,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원한 하늘 본향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 말씀입니다.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