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최초의 언약과 구속
이번에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최초의 언약에 관한 구절입니다. 우리말로는 원시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모든 것과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이 사실 이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탄이 어떻게 여자에게 접근해 그를 속였는지를 보았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14절에서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자가 속아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남자에게 주니 남자도 먹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오셔서, 이 사건에 연루된 뱀과 여자와 남자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창세기 3장 14절과 15절에서 하나님이 뱀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주의해서 들어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복수형이 아니라 단수형으로 남성을 의미하는 명사입니다. 그 후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사실을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요한계시록 12장에도 이 여자의 후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 15절은 예언이자 언약입니다. 이 예언은 뱀(사탄)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며, 결국에는 여자의 후손이 승리할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주요 용어의 정의
그럼,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몇 가지 용어의 정의부터 해 보겠습니다. 여기 나오는 용어의 정의를 알아야 우리가 앞으로 연구할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여기서 원수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적대감과 전쟁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선과 악의 전쟁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3장 15절 뒷부분을 보면 하나님께서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여자의 후손”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래는 “여자의 씨”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문맥상 후손으로 번역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뱀에게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씨)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뱀은 여자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여기서 “상하게 한다”라는 말은 짓뭉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통상적인 전쟁이 아니라, 상대방이 오기를 엎드려 기다렸다가 덮쳐서 뭉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그렇게 상하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머리는 몸의 중요한 부위입니다. 모든 권위와 통제가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만왕의 왕이며 주 중의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서 그리스도가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므로 다스리는 권위가 있습니다.
한편, 사탄도 여자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발꿈치는 머리에 비하면 덜 중요한 부위입니다. 머리가 상하면 죽을 수 있지만, 발꿈치가 상하면 절뚝거릴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탄이 그리스도를 잠시 죽게 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그리스도를 죽일 수는 있으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여자 후손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인 발꿈치를 상하게 할 수는 있지만, 사탄은 머리를 상하게 되므로 그 생명을 뺏기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속의 본질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세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사탄의 잔인성과 여자의 후손을 해치려는 그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를 돕는 능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능력은 사탄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큰 능력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사탄의 계획을 좌절시킨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뱀으로 나타난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도전하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너와 이 여자 곧 너의 후손과 이 여자 후손 사이에 적대감과 전쟁이 일어나게 하겠다.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고, 너는 여자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자신이 상대할 전쟁의 상대가 이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이 여자에게 아이가 태어날 것인데, 사탄이 그 아이 곧 이 여자의 후손을 정복하지 못하면, 그는 이 전쟁에서 영원히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 전쟁
(가인과 아벨)
사탄은 모든 것을 아는 전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상대할 이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가 낳은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을 곧장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아벨은 의인이었고 가인은 불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희생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의 희생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을 보면, 아벨은 믿음으로 희생을 드렸으나 가인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드린 희생은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드렸을지 모르지만, 믿음으로 드린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희생을 받으셨고 가인의 희생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화가 난 가인은 그의 형제 아벨을 죽여 땅에 묻었습니다. 불경건하고 악한 가인이 의로운 아벨을 죽이자 지옥은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이제 여자의 후손 가운데 의인은 죽고 악인만 홀로 남았습니다. 그 당시 지옥은 쾌재를 불렀겠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구속의 경륜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성경의 나머지 부분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장차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한 사람을 여자의 후손 가운데서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또 다른 아들인 셋이 있었습니다. 셋은 의인이었지만, 가인은 여전히 불경건한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사람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들
오랫동안 셋의 경건한 후손과 가인의 불경건한 후손은 서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두 후손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는 창세기 10장을 다룰 때 자세하게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들이 한동안은 서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6장 1절부터 8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이 두 부족 간의 교혼인지 아니면 일부다처제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취해서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악해지고 이 현상은 지속되어 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숨을 쉬는 모든 생명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경건한 후손이라도 불경건한 후손과 분별없이 결혼하게 되면, 결국에는 불 경건하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불경건한 사람들이 경건한 사람들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스위스 인터라켄 외곽에 나란히 흐르는 두 개의 작은 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다른 강에는 흙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두 강이 하류에서 합류해 하나가 됩니다. 두 강이 합류한 직후 한동안 한쪽으로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다른 쪽에는 흙탕물이 흐르지만, 조금 더 내려가면 이내 흙탕물로 변하고 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3절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악한 동무가 있다면, 우리가 취할 행동은 세 가지입니다. 악한 동무처럼 되거나, 악한 동무를 선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 동무를 떠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분별없이 서로 섞이게 되면, 결국에는 모두 다 악해지고 맙니다.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쯤은 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가 방주를 지어 이 세상을 구했습니다. 악이 만연한 세상 가운데서도 이렇게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해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이어갔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렸고, 그것으로 만든 포도주를 마시고 노아가 술에 취했습니다. 일은 항상 이런 식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경건했던 노아도 이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홍수 이전에 있었던 악이 홍수 이후에도 이렇게 되살아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씨(후손)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로부터 열 세대가 지난 후에 아브람이 태어납니다. (아브람은 후에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고향 갈데아 부근에서 그에게 나타나셨고, 후에는 갈데아 북부 지역 헤브론에서도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씨)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아브라함의 씨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 후손이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장차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원래 여자의 씨 곧 여자의 후손이었는데 이제는 아브라함의 씨 곧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후손을 낳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 사래와 결혼했습니다. (사래는 후에 사라로 이름이 바뀝니다). 사래가 임신을 하지 못하므로 아브람은 그의 아내를 통해서는 후손을 가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기다렸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99세, 사라는 89세가 되었습니다. 이 나이에 설령 사라가 임신한다고 하더라도 순산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탄이 승리한 것일까요? 아마도 지옥에서는 또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실수하신 거야.”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야 하는데, 후손을 낳아야 할 여자가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이니 말입니다.
사라가 임신하여 출산하려면 기적이 두 번 일어나야 가능할 것입니다. 여기서 두 번의 기적이란 첫째, 사라가 임신할 수 있도록 몸이 고쳐져야 하는 것과 둘째,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설사 출산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획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가능한 분입니다.
마침내 사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그 아들을 이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름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한동안 쾌재를 불렀던 지옥의 웃음은 사라지고, 이제는 하늘과 땅이 웃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의 후손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배지 못하는 태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목적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기근과 아브라함의 후손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야곱을 낳고, 그 야곱의 후손이 이집트로 이주할 때는 75명으로 숫자가 늘었습니다. 그 당시 요셉은 이미 애굽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온 세상에 가뭄이 들어, 여차하면 이집트에 내려가 있는 요셉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 부닥쳐있었습니다.
그 당시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은 이집트에서도 여자의 후손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집트의 왕 파라오 때문에 여자의 후손이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집트 왕 파라오가 히브리인이 낳은 남자아이를 다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여자의 후손은 파라오의 딸인 공주의 집에서 살았던 모세에 의해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 남자아이를 모조리 죽이라고 한 파라오가 궁궐에서는 자기 손자 모세를 무릎에 앉히고 귀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실상은 나중에 이집트를 열 가지 재앙으로 몰아넣을 바로 그 아이를 파라오가 기른 셈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자의 후손은 보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로 이주한 야곱의 열두 지파 가운데 유다가 여자의 후손을 이을 지파로 선택을 받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창세기 49장 8절부터 12절에 나옵니다.
다윗의 후손을 죽이려는 시도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유다 지파 가운데서도 다윗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사탄은 골리앗을 통해서 그를 죽이려고 시도했습니다. 후에는 사울을 통해 죽이려고 했고, 그 후에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통해 죽이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도록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제가 사무엘하 7장 12절부터 읽겠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이것은 ‘다윗의 수한이 차서’라는 뜻입니다)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그런데 세월이 흐른 후 이스라엘 나라가 남방 유다와 북방 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맙니다. 다윗의 후손이 남방 유다를 다스리고, 불경건한 왕들이 북방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북방 이스라엘 왕 가운데 아합은 이세벨이라는 사악한 여자와 혼인했습니다. 그들 사이에 아달랴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남방 유다의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여호람이 이스라엘 역사상 이세벨에 버금갈 만큼 사악한 그의 딸 아달랴와 혼인을 했습니다.
사악한 여자와 다윗의 후손
이 아달랴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바알 신을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 소식을 듣자 아달랴가 남방 유다의 왕족을 모조리 죽입니다. 아달랴가 죽인 왕족은 자기 손자들이었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열왕기하 11장과 역대하 22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아달랴도 손자 가운데 요아스는 죽이지 못했습니다. 아하시야의 누이이자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던 여호세바가 그 당시 한 살밖에 안 된 요아스를 예루살렘 성전에 숨겨 목숨을 구했습니다.
만약 아달랴가 이 아이까지 죽였다면, 그 한 살짜리 아이를 죽였다면, 여자의 후손은 계속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쟁에서 패하는 분이 아닙니다. 사탄은 온갖 시도를 다 해 보았지만, 정작 이 아이는 죽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존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사악한 여인의 계략이라도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히스기야
또 세월이 흘러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의인이었지만, 병이 들어 죽어야 했습니다.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그가 병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 그가 죽게 될 테니 집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예사롭지 않은 일을 합니다. 그의 얼굴을 벽에 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통곡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왜 더 살려달라고 했을까요?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3절에서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왜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다시 그에게 보내 그가 15년을 더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그의 씨 곧 후손이 없었습니다. 15년 후 그가 죽을 때 그의 아들 므낫세가 12세에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기보다는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후손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히스기야의 병 때문에 좌절되지 않았습니다.
악한 하만과 유다의 남은 자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주전 722년 북방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남방 유다도 주전 586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 후 페르시아 제국이 유다인을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은 성경에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으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왕이 연회를 베풀 때 자신의 아름다운 왕비 바스디를 연회에 불렀습니다. 그러나 왕비가 연회장에 나오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진노해서 왕비를 폐위해 버립니다. 그 후에 새 왕비를 뽑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섭리로 히브리 처녀 에스더가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 에스더에게는 자신을 친딸처럼 보살펴준 모르도개라는 삼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이인자로 하만이라는 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병거가 있었는데, 그가 병거를 타고 “왕이 존귀하기를 원하시는 자에게 모두 엎드리라”라고 하면서 수산 성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데, 단 한 사람 모르도개만은 무릎 꿇어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엎드려 절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만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도개를 죽이려고 했지만,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는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악랄한 계획을 꾸밉니다. 그가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나라에 왕과 왕의 신들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신을 섬깁니다. 그리고 그들의 숫자도 많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적들이 쳐들어올 때 그들이 그 적과 합세하면 우리가 망할 것이니 우리가 이 히브리 민족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왕은 하만의 그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유다인은 정해진 날짜에 모두 죽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미 왕의 인장을 찍은 조서가 페르시아 전역에 전달되었습니다. 모르도개가 이 사실을 알고 왕비 에스더를 찾아갑니다. 그는 에스더에게 남편인 왕에게 가서 우리 유다 민족을 구해주기를 간청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스더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남편인 왕에게 갈 때 왕이 그가 가진 규를 내밀지 않으면 저는 죽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모르도개가 말했습니다. “이때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는 삼촌 모르도개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왕에게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왕에게 나아갈 때 왕이 규를 내밀지 않으면 죽으리라고까지 결심합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갔는데, 왕이 그에게 규를 내밀었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이 준비한 연회에 왕과 하만을 초대했습니다.
그날 밤 왕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하에게 페르시아 제국의 역대 일기를 읽게 했습니다. 그 일기에는 왕을 죽이려는 음모를 모르도개가 발견하고 왕의 모살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모르도개에게 무슨 상이라도 내렸느냐?”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아무 상도 주지 않았나이다.” 사실 모르도개는 무슨 상을 바라고 이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을 섬기는 것으로 만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침 그때 하만이 왕 있는 곳에 들어왔습니다. 왕이 하만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은 자기 외에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누가 있겠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그 말을 듣고 왕이 말합니다.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이것은 하만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모르도개를 매달아 죽일 결심을 하고 이미 기다란 장대를 준비해둔 하만에게 이것은 너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모르도개가 죽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날 밤 에스더는 왕과 하만을 위해 베푼 잔치에서 하만의 음모를 왕에게 밝혔습니다. 그 음모를 알게 된 왕은 진노했습니다. 그래서 하만이 만든 장대에 하만을 매달아 죽이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다인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원수를 갚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은 에스더가 민족을 구한 날을 부림절로 해마다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서 여자의 후손은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헤롯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마리아가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이제야 그 아이가 다름 아닌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죽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래 아이를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이미 이집트로 피신한 뒤였습니다.
그 후에도 사탄은 포기하지 않고 광야에서 예수가 죄를 짓도록 시험합니다. 그때 사탄은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까지 인용하면서 그를 시험했습니다. 그 후에도 사탄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시험했습니다. 마침내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하려고 예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까지 씌웠습니다. 그를 하늘과 땅 사이에 세운 십자가에 매달아 피투성이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하늘에서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버림을 받았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도 그를 버렸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에 달린 그는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었던 동안 하늘도 어두워졌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도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여, 아버지의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쾌재의 함성이 그쳤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 15절 말씀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로써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시고 죽음의 권세를 잡은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렸습니다. 드디어 여자의 후손 예수님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6장 19절과 20절 말씀입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우리의 경건한 삶과 죽음으로 우리도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다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우리가 시험당할 때 지금 사탄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탄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 세상 권세를 쥔 사탄보다 크신 분이며, 우리가 사탄을 이기고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서 사탄에게 승리하신 주님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세력에서 승리하는 교회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사탄에 대해서만 승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는 우리가 승리 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장 7절입니다. 이 구절 뒤에 바로 이런 말씀이 뒤따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그러므로 우리가 사탄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탄에게 승리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손을 잡고 날마다 사탄과 맞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사탄의 머리는 계속 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겠지만, 하늘나라에서 구속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사탄을 정복하신 예수님을 주제로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