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그 태초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신명기 29장 29절에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난 일”은 성경에 기록한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성경은 오랜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그 태초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태초부터 시작해서 인류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의 제목을 “성경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으로 정했습니다. 이 시리즈가 여러분의 성경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구약을 먼저 연구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왜 구약을 연구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구약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데, 왜 굳이 구약을 알아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모세의 율법 아래 살고 있지 않으므로 구약을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구약에는 모세의 율법만 들어 있는 게 아닙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인 사람을 하나님의 섭리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그 역사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구약만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까지 포함해 성경의 역사를 세 구분으로 나누어 연구해 볼 것입니다. 먼저 구약에 나타나는 시기 순서로 하나씩 그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왜 구약을 연구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먼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왜 우리가 구약을 연구해야 할까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만큼 구약이 정말로 중요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저는 우리가 구약을 연구해야 할 일곱 가지 이유를 차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지혜를 얻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 구약을 연구해야 합니다. 신약성경 디모데후서 3장에 우리가 구약의 역사를 연구해야 할 첫 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0절, 11절, 12절을 보면, 디모데는 이미 바울이 그에게 전해 준 “교훈과 그의 행실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박해와 고난을 겪었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박해를 받았지만, 주님께서 그 모든 것 가운데서 건져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14절부터 17절까지 읽겠습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말합니다.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던 성경은 구약이었습니다. 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교훈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들과는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3절을 읽겠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 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여기 나오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이 누구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거나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전후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아직 완성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던 성경은 구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약성경을 가리켜 바울이 뭐라고 했는지 주의해서 다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 구절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여기서 말하는 성경 곧 구약을 안다면, 그것이 디모데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46절 47절 말씀입니다. “모세를 믿었다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니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이렇듯 구약은 장차 올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마침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에서, 바울은 갑절이나 존경받아야 할 장로들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17절,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곧이어 17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바울이 말한 성경은 구약입니다. 그가 인용한 구절은 구약 신명기 25장 4절입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 7절에서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에서 구약 신명기와 신약 누가복음에 나오는 구절을 동시에 인용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기록할 그 당시에 누가복음은 이미 필사되어 여러 곳에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 말씀에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구약과 신약이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에 이르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약만 알고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하는 능력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약을 연구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 우리가 신약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이 구약이기 때문에 구약을 연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3장 20절부터 24절을 읽겠습니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사무엘을 포함해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이때 곧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을 모른다면 신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완성이 신약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은 구약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그림자에 대한 실체가 신약입니다. 신약은 구약의 불완전한 부분을 보충해 주며, 구약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은 그 바탕을 구약에 두고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구약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구약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장차 오실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으로 구약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사람들이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가 인자로 온 바로 자신이며 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구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두 가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했다는 것과 그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성경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5장 그 당시에 유일한 성경은 구약이었습니다. 그 구약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그림자로 보여주었습니다. 때로는 시편에서, 잠언에서, 그리고 예언서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 전체가 예수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에티오피아의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린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도자 빌립이 그에게 다가가 구약 이사야서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그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시가 구약의 어떤 부분을 읽었더라도 상관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 전체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자기가 읽는 성경 구절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빌립이 성경의 그 부분부터 시작해 예수에 관해 내시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이해하려면 구약을 연구해야 합니다.
넷째, 고대 시대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역사가 구약이기 때문에 구약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 네 번째 이유는 사실 성경에 나오는 이유는 아니지만, 그런데도 우리가 구약을 연구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구약성경은 그 당시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 기록입니다.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S. 듀랜트는 그의 부인 아리엘과 함께 “The Philosophy of Civilization” 우리말로 번역하면 “문명 이야기”라는 여러 권으로 구성된 시리즈를 저술했습니다. 그 문명의 철학 시리즈 제1권 “동양의 유산”에서 고대 수메르 문명을 언급하는 글이 있습니다. (국내 번역본은 10권 세트로 구성, 퓰리처상 수상 작품)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대 수메르 당시 이 제국에 관해 정확하게 기록한 유일한 책은 구약성경밖에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는 있었지만,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신론자도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가지론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구약성경이 수메르 제국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아무도 역사를 기록하지 않을 때도 하나님이 역사를 기록했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헷 족속에 대한 기록을 아무도 남기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헷 족속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고학에서 발굴하는 증거를 하나님은 이미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역사는 모두 증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대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정확합니다. 이렇듯 구약성경은 고대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입니다.
다섯째, 우리가 구약성경을 연구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구약성경이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선하게 산 사람과 악하게 산 사람의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선지자들의 삶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0절, 11절입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아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느라.”
야고보는 박해와 조롱을 인내한 선지자들의 삶을 본받으라고 그리스도인들을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욥의 인내를 너희가 들어서 알지 않느냐고 구체적인 예를 듭니다. 여러분도 아마 욥이 어떻게 인내했는지 들으셨을 것입니다.
저는 욥이 항상 인내했던 사람이었으므로 불평은 하지 않은 줄로 알았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닥쳐도 끄떡하지 않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욥기 전체를 자세히 읽어보고는 제가 욥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더미에 앉아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한 말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제가 하나님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온갖 슬픔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 관에 하나님과 토론하고 싶습니다. 제 하소연을 늘어놓고 싶습니다.”
그런 욥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욥의 인내란 말인가?” 그러다가 야고보서 5장을 읽고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느라.” 결론은 욥이 나중에 회개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중에 한 말을 알기 쉽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주님,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제가 이런 폐허더미에 앉아 있어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제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여기 앉아서 주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그 후 욥은 하나님을 의심했던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조롱하고 꾸짖었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런 욥에게 하나님은 갑절로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닥치고 불평하고 싶을 때, 그것을 하나님께 가져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불평하지는 마십시오. 우리의 불평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불평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인내하십시오.
이렇듯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삶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와 같은 원리를 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절부터 6절까지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바울은 부정적인 예를 몇 가지 보여줍니다. 야고보가 선지자들과 욥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유대인의 부정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같은 나쁜 예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점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7절부터 1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7절,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고 함과 같으니라.”
8절,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바울은 “우상숭배 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주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행하시는 일을 원망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1절에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역사는 사건이 일어난 그 당시 사람들을 위해 기록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후대 사람을 위해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구약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선지자들과 욥처럼 어떻게 인내하지는 배워야 한다.” 그리고 바울은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처럼 너희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역사를 통해 선한 일과 악한 일의 무엇인지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섯째, 우리가 구약을 연구해야 할 이유는 인내와 위로와 소망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약에 기록된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4절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여기서 “구약에 기록된 모든 것”이라고 말한 점에 주의하십시오. 구약에 기록된 모든 것, 그 하나하나가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이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우리가 인내와 위로와 소망을 배울 수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구약이 어떻게 이런 기능을 할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선을 행할 때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할 때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라는 벌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다윗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지만, 후에 회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와 같은 예를 수없이 반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는 듯이 보일 때가 있지만,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 삶에 관여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만약 우리가 납치를 당하거나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다니엘과 같은 본보기가 있습니다. 에스더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로기에 이방 땅에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위대한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희생 제도는 어떻습니까? 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 모든 희생 제도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지자들이 비록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셨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며 약속이었습니다.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약에 기록된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우리가 구약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빛과 같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6부터 18절까지 읽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여기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이 사건을 직접 본 증인이라고 한 점을 주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엄을 직접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그들의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직접 본 증인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서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것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 확실한 것이 무엇일까요? 1장 19절을 읽겠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그러므로 그 확실한 것은 구약성경 곳곳에 들어 있는 예언입니다. 그 예언이 그들이 변화산에서 보고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선지자들의 예언이다는 뜻입니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 읽겠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언급인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는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도 직접 들은 사람들입니다. 인생에서 참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고 그 증인인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에 관해 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선지자들의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을 연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더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무 불빛도 없는 깜깜한 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여러분에게 아주 작은 불빛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결코 미약한 빛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아무 빛도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거나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이 없어서 방황하고 넘어지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을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나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약을 연구하는 이유입니다.
그럼, 이제 “성경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통해 성경을 어떻게 연구할지 그 차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1부에서는 먼저 창세기 1장부터 11장 9절까지를 다룹니다. 여기서 “구약 역사의 서막”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 서막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속하시는 목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2부에서는 창세기 11장 10절부터 말라기 4장 6절까지를 다룹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구속의 계획을 펼쳐가는 과정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후손으로 나라를 이루셨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백성에게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생기고 결국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이 돌아오면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구속의 계획은 여전히 계속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3부에서는 신약성경 마태복음부터 유다서까지 그곳에 걸쳐 펼쳐지는 구속의 계획을 살펴보게 됩니다. 사복음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보면서 마침내 구속의 서막이 어떻게 열리는지를 살펴보고, 사도행전을 통해서는 그 전개 과정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제4부는 구속의 완성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관한 연구입니다. 요한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우리의 주님이며,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영어로 history라고 합니다. 여기서 his 그의 곧 “하나님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story는 이야기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역사 history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이 위대한 “성경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