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창조부터 타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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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리즈 소개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는 성경의 서막 부분입니다. 여기에 창조에 관한 내용이 있지만, 사실 창조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되는 이야기도 이 부분에 나옵니다. 그럼,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3절에 걸쳐 나오는 우주의 창조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모든 만물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진행할 모든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음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5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우리는 보통 낮과 밤, 아침과 저녁 이런 순서로 하루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의 날짜는 오후 6시부터 시작해서 다음 날 오후 6시에 끝납니다. 우리가 여기서 살펴볼 히브리의 날짜 개념이 이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하루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하루는 천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창세기에 나오는 하루는 24시간입니다. 저녁 시간과 낮 시간을 합쳐 하루 24시간 하루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1:6-2:3)

창조 외 다른 이론에 대한 반박

방금 아주 긴 내용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에는 매우 포괄적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창조의 첫날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이 부분은 물질의 기원에 대한 인간의 모든 이론을 배격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창조는 물질이 영원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물일의 영원하다는 이론을 배격합니다. 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이 항상 여기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항상 계시는 분입니다. 태조에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 전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창조는 다신론을 배격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는 태조에 어떤 계획이 없었다는 불가지론을 배격합니다. 불가지론은 아무 의미 없이 지구가 돌고 있고 아무 의미 없이 그 위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창조는 계획된 것이지 아무 이유 없이 물질이 여기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는 물질이 우연히 발생했다는 운명론을 배격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운명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조물 속에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관여하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창조론은 모든 만물에 신이 있으며 신이 그 만물이다는 범신론을 배격합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존재하기 그 이전에도 계신 분입니다.

창조론은 또 진화론을 배격합니다. 왜냐하면 6일 동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순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먼저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후 하늘과 땅에 사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의 첫 3일 동안 하나님은 창조의 나중 3일에 창조하신 것들이 거할 수 있는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의 창조

창세기 2장 4절부터 25절에서 우리는 인간의 창조가 여섯째 날에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당히 긴 내용이지만, 이번 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연구할 내용이 사실은 이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으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므로 창세기 2장 4절부터 7절에 나오는 인간의 창조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 장면을 마음속으로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숨을 쉬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모습으로 벌거벗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사진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고 복종하게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친밀한 친구였습니다.

창세기 2장 8-15절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사람에게 맡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의무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할 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금지사항도 있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창세기 2장 16절, 17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그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허락하셨지만, 최소한의 금지사항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장 18절부터 20절을 보면 사람이 땅에서 어떻게 번성해 가는지가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는 아담의 가슴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가 선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인간에게 복종해야 하는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떤 것도 사람을 돕는 자가 될 수 없었고 그에게 어울리는 배필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담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어떤 피조물도 그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필요를 채워주셔야 했습니다.

2장 21-23절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하나님이 여자를 왜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을까요? 아담은 그 이유를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이것은 남자의 내부, 여기서 남자의 내부를 자궁으로 비유하겠습니다. 이것이 남자의 속에서 여자가 나온 유일한 때였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자궁에서 나왔습니다. 남자의 몸 내부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지으실 때 남자의 머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남자의 발에서 취한 것으로 여자를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항상 남자 곁에서 동행하면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될 수 있도록 남자의 옆구리에 있는 부분을 취해 남자에게 어울리는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성경은 “이러므로 즉, 여자는 남자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창 2:24).

이렇게 해서 남자와 여자는 하나가 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장 25절에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순수했고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죄를 짓지 않았으며 죄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그것을 알기를 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그들이 순수했습니다. 아담과 화와가 그 당시에 알고 있었던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으므로 에덴동산을 가꾸지 않는다면 그게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도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에는 네 가지 단면이 있습니다. 우주를 다스리는 권한, 온갖 종류의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 그들을 굴복시키는 권한, 그리고 땅을 경작하는 권한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또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임무이기도 했습니다.

시험과 타락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이 에덴동산에 뱀의 모양으로 들어와 여자에게 접근합니다. 사탄이 왜 여자에게 접근했을까요? 그것은 여자가 가진 감수성의 특성상 영향을 받기가 더 쉬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그녀의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여자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 질문에 하와가 대답합니다. “아니야, 뭐든지 먹을 수 있어. 우리가 먹을 수 없는 이 나무의 열매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이 왜 그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너희가 그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야.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이라서 너희가 그 열매를 먹지 못 하게 하신 거지.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치 않으시거든.”

사탄의 말은 사실이 아니지만, 하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하와가 그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하와가 그 나무를 전에 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먹음 직했습니다. 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웠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하와는 그 열매를 따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벌거벗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벗은 몸이었지만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순수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선악을 알게 되었고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그들의 몸을 감췄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몸을 제대로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은 인간은 어떤 일도 올바르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녁 서늘할 때 늘 그러셨던 것처럼 동산에 오셨습니다. “아담아, 이디 있느냐?” 하나님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묻지 않으셨습니다. 잠언 15장 3절 말씀처럼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에 숨었는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아담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아담이 정직했다면, 그는 “제가 지금 죄 안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아담이 바로 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앞에서 그 나무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아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저는 아담의 이 대답이 하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아담의 이 말은 실제로는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하와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하와도 실제로는 하나님께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는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 이 말씀은 하나님이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사탄이 저주를 받을 것이며 선한 사람들과 갈등을 빚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여자에게는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입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그리고 남자에게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는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 후 하나님은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그들의 벗은 몸을 덥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그룹(천사)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그들이 동산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동산에 들어와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 나무를 먹을까 봐 그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이기도 했습니다.

여자를 유혹한 사탄의 계략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좋은 교훈이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선악을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로 여자의 마음속에 의문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와 맺은 언약을 무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죄와 벌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부정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왜곡했습니다. “그 열매를 맺으면 너희가 죽는다고 말해야 낫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 거야.” 그리고 하나님을 시기하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했다고 왜곡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와가 하나님처럼 지식을 알도록 교만의 마음을 부추겼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여전히 그 교활한 도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물질적인 필요와 그에 대한 추구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입니다. 이렇듯 사탄은 사람들에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들이 필요하다고 유혹해 이 세상 사람들을 다스리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여자가 넘어진 것은, 그런 교활한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하와는 이것에 대해 하나님께 여쭤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로 하나님께 여러분이 당하는 유혹과 시험을 아뢰십시오. 그러면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와가 타락했을 때 두 가지 결과가 뒤따랐습니다. 그것은 출산의 고통과 남자의 지배를 받고 그를 사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타락했을 때는 네 가지 결과가 뒤따랐습니다. 첫째, 순수성을 잃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이 벗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수치입니다. 죄를 덮으려고 시도한 것을 볼 때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그들이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어버렸습니다. 넷째,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생명나무와 분리되는 것이며 영적인 죽음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주 하나님이 두 번 나타나시는 것을 봅니다. 창세기 3장의 핵심은 구속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그다음 부분은 창세기 3장에서 처음 나오는 구속의 이야기에 관한 후속편입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전쟁이 있을 것인데, 여자의 후손이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는 구속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그녀의 후손이 그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동물의 가죽으로 그들의 벗은 몸을 덮어주는 옷을 만들어 주셨을 때,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어 모든 사람의 죄가 덮어질 것이라는 예표를 보여 주셨습니다. 구속은 생명과 그 죽음의 반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아담이 죽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도 살다가 죽고 자녀를 낳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는 오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삶과 죽음의 반복이 구속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갈등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벌어집니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손입니다. 여러분,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 영혼을 위한 전쟁에서 여자의 후손이 승리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다음 편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