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이번 과로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희생제도 연구를 마칩니다. 본과에서는 희생 제사에 대한 결론과 레위기 16장 1-34절에 나오는 속죄일의 의식을 다룰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론은 준비해야 했습니다. 지난 과에서 백성이 속죄일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라고 언급했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아론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의 준비에는 여러 가지 반드시 행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속죄일 이전 364일 동안은 아론이 그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영광스러운 예복을 입었습니다. 그 예복을 거룩한 옷이라고 불렀습니다.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출애굽기 28:2). 영어 번역본 성경 가운데는 “영광과 아름다움을 위한 거룩한 옷”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색깔이 들어 있는 옷인데, 그것은 이스라엘에 하늘을 대신하는 그의 역할을 나타냅니다.
속죄일에 아론은 성막 안으로 들어가 그 예복을 벗어 거기에 두었습니다. 그 후 물로 몸을 씻습니다. 그것은 준비인데 사실상 “세례”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정결 예식은 그가 다른 역할 속으로 온몸을 담근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속죄일에 섬기는 일반 제사장처럼 단순한 흰색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날 바쳐질 희생 동물을 받을 준비가 끝납니다.
속죄일을 위해 선택된 다섯 마리의 동물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제사장 집안과 아론과 레위 족속을 위한 속죄제 수송아지입니다. 그리고 모든 제사장을 위한 숫양이 있었습니다. 또, 두 마리의 염소가 있었는데, 각각의 염소는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의 절반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염소는 여호와의 것으로 선택됩니다. 두 번째 염소는 아사셀로 선택됩니다. 두 염소지만 하나의 희생입니다. 레위기 16장 5절에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 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그러므로 숫염소 두 마리 외에 백성을 위한 번제물로 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본과의 끝부분에서 율법에 나오는 모든 희생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특히 속죄일의 희생과 의식에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겠습니다. 그 후 이 모든 희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희생을 가리키고 있음을 설명할 것입니다. 속죄일 의식을 포함해 모든 레위 희생에서 예수를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론도 대제사장이신 예수의 사역을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11과 복습
속죄일은 일곱째 달 십 일 곧 대안식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론이 그날 모든 희생 의식을 행했습니다. 레위기 16장 17절을 보면 아론이 회막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아무도 그 회막에 있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모든 백성은 엄숙하게 모여 있어야 했고, 대제사장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어 준비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그날 의식을 시작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다섯 마리의 동물을 한 주간 우리에 넣어두고 흠이 없는지 날마다 검사를 했습니다. 아론이 그들에게 흠이 없는지 확인했습니다.의식의 단계
속죄일에 이루어지는 의식은 매우 광범위했습니다. 의식의 첫 단계는 그날을 위한 아론의 준비도 포함됩니다. 대제사장이 평상시 입는 예복을 벗고 몸을 씻은 후 일반 제사장들이 입는 소박한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는 첫 번째 단계는 성막의 성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첫 번째 단계:
미리 선택된 동물
두 번째 단계:
하나님께 동물을 드림
세 번째 단계:
백성의 속죄제를 위해 두 염소를 제비뽑음
네 번째 단계: 속죄제 희생 수송아지를 죽임
다섯 번째 단계: 분향
그 후 아론은 제사장들을 위한 속죄제 수송아지를 죽입니다. 이 시점에서 아론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지시하신 대로 향로와 번제단의 숯불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 숯불을 향로에 넣고 “곱게 간” 향을 두 움큼 집어넣습니다. 향은 기도를 상징했습니다. “곱게 간” 향은 쉽게 불이 붙도록 곱게 가루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아론은 그 향을 지성소로 가져가서 거기서 분향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레위기 16:13). 아론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의 한쪽을 밀거나 밑단을 들어 올려서 지성소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향 두 움큼을 향로에 넣거나 속죄일에 지성소에 둔 향단에 넣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즉시로 연기가 속죄소를 덮게 됩니다. 향이 상징하는 것처럼 아론이 거기서 살아남기 위한 기도를 드렸을 듯합니다.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레위기 16:13) 이것은 아론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지금 온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정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음을 압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온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라고 저에게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의 죄 때문에 취하는 겸손한 태도였습니다. 이와 같은 의식은 레위기 10장에 기록된 대로 나답과 아비후처럼 지성소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인 듯합니다.
여섯 번째 단계:
수송아지 피를 뿌림
일곱 번째 단계:
여호와 앞에서 염소를 죽임
그 후 아론은 성막으로 나가 목에 주홍색 끈을 맨 희생 염소를 잡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 바치는 염소입니다. 그리고는 염소의 피를 갖고 지성소로 되돌아갑니다. 수송아지 피를 뿌렸던 것처럼 이번에는 염소의 피로 똑같이 속죄소 위에 일곱 번, 속죄소 앞에 일곱 번을 뿌리고 성소로 들어가 성소와 지성소를 나눈 성막의 휘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립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왜 이 피를 지성소와 성소에 뿌렸을까요? 이곳은 부정한 나라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레위기 16장 16절에서 아론은 지성소와 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라고 말합니다.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이 부정한 백성과 만나야 하므로 부정한 오염으로부터 하나님의 성결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호와 앞 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 (레위기 16:18-19).
여덟 번째 단계:
아사셀 의식
아홉 번째 단계:
아사셀을 위한 염소
아론은 이제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로 보냅니다. 그 염소를 때로는 “속죄의 염소”라고 불렀습니다. 속죄의 염소(속죄양), 오늘날에도 이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뒤집어쓰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사셀 염소는 죄를 짊어지고 가는 동물이었습니다.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내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놓아둡니다 (22절). 후에 히브리인이 뿔에 주홍빛 끈을 맨 염소를 발견하면 절벽 아래로 밀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축적된 죄를 짊어진 그 염소가 다시 이스라엘의 진영으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진영을 다시 부정하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듯 합니다.
아론이 그 염소를 진영 밖으로 데려가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염소를 진영 밖으로 보냈습니다.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21절). 염소를 광야로 보낸 사람은 아마도 제사장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구체적으로 밝혔을 것입니다. 그는 그날의 의식을 위해 미리 정한 사람인데, 그 염소의 머리에 상징적으로 죄를 옮겼으므로 염소를 광야로 데려간 사람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기 전까지는 부정했습니다. 그러다 해가 지면 정결해져 진영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열 번째 단계:
아론이 예복을 다시 갈아입음
열한 번째 단계:
번제 희생
열두 번째 단계:
수송아지 기름을 번제 양과 함께 불사름
열세 번째 단계:
속죄제 동물 몸의 처리
속죄제의 의미와 교훈
아사셀 – 히브리어로 강력히 제거한다는 뜻
이 모든 복잡한 의식에서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속죄일 의식을 자세히 관찰하고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아사셀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합성어인데, 두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앞의 첫 단어는 “강함”이나 “힘”을 뜻합니다. 뒤에 나오는 두 번째 단어는 “제거”나 “치우다”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단어를 합성하면 “이스라엘의 죄를 강력히 제거”하는 것을 뜻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장차 모든 죄를 실제로 강력하게 제거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죄가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제거되었음을 배웁니다. 일반적으로 그 염소를 속죄의 염소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죄를 짊어진 염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염소를 광야로 보낼 때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 할렐루야.” 그들의 죄가 제거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마지막 심판 장면을 보면, 주님이 보좌에 앉아 양과 염소를 구별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무죄(양)와 죄악(염소)을 구분합니다. 그러므로 이 염소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고 광야에 들어간 것이 분명합니다.
두 염소지만 단 하나의 속죄제
여기서 배우는 세 번째 교훈은 이 두 염소지만 한 희생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구속 행위의 서로 다른 두 가지 단면을 보여줍니다. 여호와를 위한 첫 번째 염소는 대속의 근원이자 원인으로 드려졌습니다. 아사셀을 위한 두 번째 염소는 용서를 허락하는 대속의 효과를 나타내 주었습니다.거기에 나타나는 예수
이것은 첫 번째 염소가 실제로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희생된 죽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똑같은 희생을 위한 한 부분인 두 번째 염소는 광야로 보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주님은 희생에서 살아남으셨습니다. 무덤에서 돌아오신 것입니다. 아론이 행한 모든 의식은 대제사장인 예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셨습니다. 두 번째 염소는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를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그는 대제사장으로 백성의 죄를 제거하셨습니다. 그는 희생을 드린 후 지금 살아 계셔서 백성의 죄를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6-27절은 예수가 백성의 죄를 자신이 희생으로 제거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예수는 두 염소와 그날 바쳐진 수송아지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아론의 준비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아론의 준비와 그날 그가 행한 역할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아론은 그날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아름답고 영화스러운 예복을 벗었습니다. 그 행동은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그의 모든 신적 영광, 거룩 및 아름다움을 버렸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자신을 씻을 때 (자신을 낮추심으로) 신적 영광이 사라지는 것으로 보였으며, 씻은 후 다시 나타나시어 겸손한 하나님의 종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섬겼습니다. 일반 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갈아입은 것은, 그가 겸손으로 옷 입은 것을 상징합니다. 겸손한 인간이자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모든 계명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겸손한 종의 역할을 감당하셨습니다.
아론은 모든 대속 행위를 마친 후 성막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하늘의 영광이 담긴 왕의 예복을 다시 입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승천하시어 성부의 오른편으로 돌아가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속죄일의 상징에서 이것을 의도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희생적 사역을 그림자로 보여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8-9절은 속죄일에 일어난 일들이 상징적 의미가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의 죄가 어떻게 되었나?
우리는 속죄의 염소가 이스라엘의 죄를 실제로 멀리 가져간 것이 아니라, 단지 상징적이었음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상징적으로 염소의 머리에 옮긴 이스라엘의 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진영 밖으로 나간 죄는 어디에 있을까요? 히브리인에게 이 질문을 던져봅시다. “당신의 죄는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아, 용서받았습니다.” “네. 그렇지만 어디 있을까요?” “글쎄요. 광야로 나간 염소 머리에 있을 거예요.” “그럼, 그 죄가 염소의 머리 위에 계속 남아 있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어떤 식으로든 처리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염소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믿었을까요? 히브리인들은 한결같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누구도 그렇게 믿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처리하신 어떤 방법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죄가 용서되었는가?
우리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들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그들이 이해했든지 못했든지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대속을 믿고 순종함으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의식을 자신의 것으로 적용한 사람만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묵상하면서 자신의 죄를 슬퍼했고 그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죄가 덮어진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그 죄를 책임지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 죄를 처리할 것이다.”매년 염소 한 마리가 희생됨
매년 축적된 죄를 위해 염소 한 마리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1,400년 역사상 엄청난 염소 떼가 희생된 것인데, 여기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큰 교훈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1,400마리의 염소를 광야로 보냈다는 뜻입니다. 그들을 그냥 광야로 보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갈보리 십자가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마음속에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는 이스라엘 1,400년 역사에 축적된 죄를 그들의 머리에 진 염소 떼에 둘러싸여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마리 한 마리 염소의 머리에 있는 죄를 그리스도에게 옮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그 모든 죄를 범한 것처럼 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1,400년 역사를 통해 축적된 죄가 1,400 마리 염소의 머리에서 예수에게 옮겨졌습니다. 그는 그 모든 죄의 형벌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거기서 모든 죗값이 상징적이 아니라 실제로 치러진 것입니다. 그곳은 예수가 백성의 모든 죄악을 짊어진 곳입니다. 그것이 나무에 달린 그의 몸이었습니다. 세상의 죄가 거기서 덮어졌습니다.삼 일 후 그가 죽음에서 살아나실 것이다
삼 일 후 예수가 죽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아사셀을 위한 염소 곧 죄를 강력하게 제거하는 염소가 상징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십 일 후 예수님이 성부의 오른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으로서 영화스럽고 아름답고 거룩한 그의 옷을 다시 입으셨습니다. 이 모든 속죄일 의식을 통해 이것이 예언되었음이 분명하며, 희생 및 제사장과 관련된 의식의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은 관대하게 백성의 죄를 위한 희생을 준비하셨지만, 실상은 이렇게 말씀하신듯합니다. “내가 이 동물을 너희를 대신하여 받을 것이다. 그 동물이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내가 너희를 대신하는 예수의 희생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죗값을 완전하게 치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죽인 것은 우리의 죄입니다. 이전 과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가 담당하셨음을 인정하고, 그가 또한 우리 죄를 대속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죄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손에 못을 박고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기까지 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모든 면에서 그를 죽인 것은 우리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희생제도 요약
그럼, 이제 본 과정에서 배운 모든 희생을 한데 묶어 요약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에 드린 희생이 각기 다른 희생이 모든 면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모세 율법의 여러 희생 곧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속죄일 희생과 관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습니다.
죄를 지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 생명을 잃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를 위해서도 자기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자기 생명을 이미 죄에 주었기 때문입니다. 죄 없는 사람만이 그 생명을 다른 사람을 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는 무죄해야만 했습니다. 정결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성결한 전 생애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표징과 계속되는 번제의 상징을 성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 성결과 성화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불이 꺼진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를 무죄한 희생이 되게 했습니다.
그가 십자가로 갈 때 하나님은 그를 죄 없는 희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갈 때 하나님은 사람의 죄와 악행을 그에게 지울 수 있었고, 마치 그가 악행을 저지른 것처럼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 죄악을 범한 것처럼 벌하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흠 없고 완전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마치 그 사람이 한 것처럼 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갈보리의 피 아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무죄로 보실 수 있는 이유입니다.
대속을 드리셨으므로, 사람은 이제 예수가 드린 희생 제사의 첫 열매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소제로 이루셨습니다. 그 후 사람은 하나님과 한때 가졌던 화평한 관계를 회복할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야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온갖 좋은 영적 축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우리의 화목제이기 때문입니다. 잔칫상,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이제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 속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계시록 19:9).
이 모든 희생의 표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역할도 성취되었습니다. 아론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이 모든 성취는 사람이 죄에서 구원받고 그 구원을 계속 유지하는 데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계속 지켜주십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후서 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