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답과 아비후

이번 과에서는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비극적인 죽음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엄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여러 중대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사건은 레위기 10장 1-20절에 기록되어 있고, 민수기 3장 4-5절에도 나옵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럼, 이 사건의 배경부터 보겠습니다.

레위기 10장의 역사적 배경
히브리 역사의 평범한 날이 아니었음

당시 행사의 상황이 그날을 아주 특별한 날로 만들었습니다. 레위기 10장의 그날은 히브리 역사상 평범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출애굽기 40장 34-38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막 안에 들어가는 특별한 기물이 준비되었습니다. 모든 기물은 준비되었고, 성막을 세웠고, 모세가 점검했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 성막의 자세한 모형에 관한 지시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형에 따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막이 완성되고, 점검하고, 모형에 맞는지 모세가 확인을 끝내자, 이제 성막은 사용을 개시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홀연히 성막 위로 구름이 내려왔습니다 (출애굽기 40:34).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 하신다는 상징이었습니다. 레위기 10장은 바로 그날의 행사와 관련된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개시하는 날이었습니다. 대속과 예배의 희생이 이루어지는 성막의 사용을 모세가 개시하는 날이었습니다.

히브리 예배를 위한 개시일

아론과 레위 족속의 제사장들이 정해졌고, 그 직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희생 제사에 관한 설명이 있었고, 모든 희생을 드릴 준비가 갖춰졌습니다. 그들은 축하할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온 나라가 성막과 제사장과 희생의 개시일에 모였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특별히 준비한 예복을 입었습니다. 출애굽기 28장 2-3절 말씀입니다.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에게는 땅에 대하여 하늘을 대신하는 기능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예복은 그들의 거룩한 역할을 반영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행하도록 거룩하게 하는 의식을 마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 직분에 임명하는 데는 일정한 의식이 필요했습니다. 그 의식의 첫 부분이 레위기 8장과 9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의 머리에 거룩한 기름을 붓는 것이었습니다. 기름을 그들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도 발랐습니다. 이처럼 기름을 바르는 목적은 그들의 머리, 귀, 손, 발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머리는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생각을 나타내고, 귀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손은 하나님을 섬기고, 발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행하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속죄제 희생을 죽임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해 속죄제 양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양의 피를 취해 기름을 바른 부분에 똑같이 그렇게 발랐습니다. 피를 그들의 오른쪽 귀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발랐습니다. 그 목적은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결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온몸이 죄에서 깨끗하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은 제사장이 먼저 자신을 위하여 속죄 희생을 드린 후 백성을 위해 속죄제를 드렸다고 확인해 줍니다.

온 이스라엘이 희생 제사와 축제를 시작함

이미 언급한 대로 이스라엘 온 회중이 성막 뜰밖에 모였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 모든 희생 제사를 시작했습니다. 번제를 취해 성막 뜰에 있는 단 위에 놓았습니다. 화목제 희생, 속죄제,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희생 동물에서 기름을 제거해 예법대로 제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성막의 지성소에 상징적으로 임재하셨습니다. 그의 임재가 외형적으로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나타났는데, 모두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상징은 이스라엘 모든 족속이 항상 볼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40장을 보면, 그 즉시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에서 불이 나와 희생제물과 번제단 위의 기름을 불살랐습니다. 레위기 9장 24절에 이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옵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바로 그때 나답과 아비후가 잘못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신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 준 모형대로 성막이 신실하게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제단에 불을 붙이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아론의 제사장 직분과 그들이 드린 희생을 받으셨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엎드렸는데, 이는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외하고 찬양한다는 증거였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이상한 불을 드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결과

그때 나답과 아비후가 향로를 갖고 거기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향을 더한 후 “여호와 앞”에 드렸습니다. 그 순간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번제와 단 위의 기름을 삼키고 그 두 아들을 삼켰습니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었습니다.

불이 예복을 태우지는 않음

그러나 그 불이 그들의 예복을 태우지는 않았습니다. 잠시 후에 그들의 친척들이 성막으로 들어와 진영 밖으로 메고 나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을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레위기 10:5).

나답과 아비후의 죄가 가볍지 않음

나답과 아비후의 죄가 우리에게는 사소한 실수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가혹하고 무겁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날 하나님이 좀 더 인내하시고 자비를 베푸실 수는 없으셨을까요?

나답과 아비후의 죄
그 날은 "개시일"이었음

나답과 아비후의 죄는 표면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죄가 많았으므로 하나님이 관여하지 않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날은 성막과 제사장과 희생 제도가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히브리 예배에서 이 세 가지와 속죄의 예법을 어기는 것은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바꾸거나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변경할 정당성이 없습니다. 이처럼 가장 중요한 날의 예법을 사람이 자의대로 변경하는 것을 그대로 간과하신다면 그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통치하시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날

온 회중이 경외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있을 때 나답과 아비후는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은 채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천사들도 두려워하며 걷는 곳으로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출애굽기 19장 24절을 보면 거기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친 전례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러 나타나실 때 모세에게 산에 경계를 쳐서 백성이 산에 올라오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출애굽기 19:21-22).

하나님이 그 산에 나타나신 것은 사람의 호기심이나 구경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2-13절은 동물이라도 산에 접근하면 돌로 쳐 죽임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온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로 가득한 이스라엘 자손 앞에 내려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산 아래로 내려가 백성에게 올라오지 말도록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다시 말하라.” 하나님은 어느 죄인도 호기심이나 충동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나답과 아비후가 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그렇게 충동적으로 나아가려 했는지와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진노”하신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받지 않으신 제사

나답과 아비후가 저지른 죄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의 행동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이상한 불”을 드린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난” 의식이었습니다 (레위기 10:1). 그 장소도 그들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이었습니다. “이상한 불”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은 불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상한‘”은 히브리어로 ”자“인데,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은 것들을 가리키는 말로 지속적으로 쓰였습니다.

불은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취해 분향을 위해 향로에 피우게 되어 있었습니다. 향단은 기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 불은 하나님이 붙인 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용하는 불은 반드시 그 불이라야만 합니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틀림없이 다른 곳에서 불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레위기 16장 12절은 속죄일에 아론이 하나님께 향을 피우기 위해 번제단의 불에서 불을 가져오도록 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민수기 16장 46절에 고라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하나님이 땅의 입을 벌려 그들을 산 채로 삼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아론을 적대했기 때문입니다. 성막 주변에서 죽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시에 모세에게 죽음을 피하려면 고라의 무리에서 떠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진노하시지 않도록 아론에게 번제단에서 불을 취해 여호와 앞에 향을 피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출애굽기 30장 9절은 향단과 불을 존중할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보여줍니다.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여기서 “다른 향은” 히브리어로 “쟈” 곧 “이상한 향”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30장 30절에도 이 점이 분명하게 나옵니다. “이와 같은 것(향)을 만드는 모든 자와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어떤 이상한 향이나 이상한 제사장이나 이상한 불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형 밖의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6장 40절 말씀입니다.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 하게 함이며” 여기서 “아론 자손이 아닌 사람”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 불을 붙이셨습니다. 그것은 분향을 위해 사용된 숯에 피운 불인데, 하나님은 그 불을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6장 10, 11, 13절에서 이 불은 절대 꺼지지 않도록 한 불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앞" - 지성소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승인하지 않은 불로 분향하려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그 향을 이상한 곳에서 드렸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여기서 “여호와 앞”은 그날의 역사적 문맥에서 이미 사용한 문구입니다. 레위기 9장 24절에서 제단 위의 희생을 삼킨 불의 근원을 설명할 때도 똑같은 문구가 쓰였습니다. “여호와 앞”은 지성소 안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상징적인 면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음이 틀림 없습니다. 민수기 3장 4절은 그들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 “여호와 앞에서” 죽었음을 보여줍니다. 레위기 16장 1-2절은 모세가 “여호와 앞”이라는 문구를 사용할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곳 16장에 나오는 경고는 나답과 아비후의 비극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아론의 두 아들은 바로 이 경고를 어겼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상한 불, 이상한 장소, 이상한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의 행동에는 이처럼 잘못된 배경이 있었습니다. 성막 기구의 배치에 관한 규례에 따르면 분향하는 곳은 일반적으로 성소 안이었습니다. 단 한 가지 예외는 속죄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10장에 나오는 사건은 속죄일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막 외부와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있었고, 또 다른 휘장이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했습니다. 그 휘장들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섬김을 위해 선택받지 않은 사람은 그 휘장을 통과하지 말도록 하나님이 엄하게 명령하셨습니다.

레위기와 히브리서는 구분하는 그 휘장이 죄 문제를 나타낸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 휘장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가 제거되기까지는 죄인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기 위해 서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셨을 때, 히브리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었던 휘장을 그리스도께서 둘로 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휘장이 찢어진 것은 그가 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신 것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죄 문제가 나답과 아비후 시대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이 성막에 휘장을 두신 목적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막의 각 휘장에는 천으로 짠 두 그룹(천사)이 새겨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수호하는 천사였습니다. 그룹은 또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후 에덴동산에 다시 들어가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하나님께 반역하면서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에덴동산 동쪽에도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으신"

히브리어 성경은 그 두 제사장이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으신” 향을 드렸다고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날 있을 의식에 관해 구체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분향하라는 지시는 없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지시를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법을 고안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것을 막고 그들의 성급하고 주제넘은 행동에 죽음으로 벌을 내리셨습니다.

종교적인 사항, 특히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명령 없이 행하는 것은 명령을 거슬러 행하는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악행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분향하기를 원하셨다면 그들에게 명령하셨을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레위기 10장 1절에 그에 대한 금지가 명시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으신.” 그들이 분향한 것은 이에 대한 특별한 명령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이상한 불이라는 지시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 분향하라는 명령이 있었다면 분향해야 할 사람은 그 두 제사장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그날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은 온갖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명령하셨는데 그들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명령을 내리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자의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이 무시할 수 없는 주제넘은 죄였습니다. 히브리서 9장 1절이 이를 말해줍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여기서 “예법”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켜야 하는 법, 법적 결정에 관련된 의식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용어는 구약의 제도에서 예배의 법과 규정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임을 나타냅니다. 레위기 10장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그의 예법을 무시하는 종들을 기뻐하지 않으심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감

속죄일에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레위기 16장 2절에서 모세가 아론에게 지시했습니다.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자비의 자리)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나답과 아비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아론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아론은 아무 때나 지성소에 돌진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정해진 때 외에 들어가면 나답과 아비후처럼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6장 17절 말씀입니다.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나셨습니다. 그곳을 히브리어로 “시케나 영광”이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영광스러운 곳이란 뜻입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으로 경고는 분명해졌습니다. 아론은 “아무 때나” 그가 선택한 때에 지성소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2절).

이런 제한은 후에 히브리서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강력한 구속의 표징을 만들었습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만 행하는 기능은 (레위기 16장에 언급됨) 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의 과정을 홀로 성취한 사실을 면확하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속의 성취를 돕는 나답과 아비후 같은 조력자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홀로 구속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불행하게도 나답과 아비후가 함께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속죄일이 보여주는 표징을 성취하실 때 그를 돕는 조력자 없이 하셨습니다. 속죄일의 희생에서만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론이 그날 행한 의식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술에 취함

나답과 아비후가 저질렀을 또 다른 죄가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 술 취한듯합니다. 레위기 10장 8-9절에서 그들이 불에 탄 후 아론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여기서 그 두 아들이 왜 죽었는지 설명하는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가 저지른 똑같은 죄를 아론이 저지르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나답과 아비후의 죄와 관련이 없다면 성막 개시일에 왜 음주를 금하셨을까요? 거기에는 분명히 뭔가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관제"를 마셨을 가능성

우리가 살펴볼 다른 사실이 있습니다. 레위기 10장 10절에서 하나님이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여기서 “거룩한 것“은 하나님께 속했고, “속된 것”은 세속적인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인이 그들의 “나식”(첫 열매의 관제)을 가져올 때 제사장이 그것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어 “나식”은 제단이나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에 붓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첫 열매의 어떤 것이라도 먹으면 그것은 죄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속건제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은 10절에서 아론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반드시 구분하라고 하셨는데, 이 사실은 나답과 아비후가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그날 관제를 마신 듯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포도주와 그들이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속된 것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옳지 않은 사람들이고, 옳지 않은 일을 행했고, 옳지 않은 곳에서, 옳지 않은 날에 옳지 않은 목적을 위해 옳지 않은 음주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의로운 명령에 대한 거역이었습니다. 그들의 죄가 가볍지 않았습니다. 성경적 표징을 침해하고 왜곡시켰습니다. 그 개시일에 있었던 모든 일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실 미래의 실체를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장차 그리스도의 희생에 나올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대한 어떤 변경도 실체에 대한 왜곡입니다. 장차 세워질 구조물의 변경 없이 설계도를 변경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그 모든 의식을 보여주셨고, 그 모든 표징을 성취하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관한 설계도를 존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설명하심
하나님의 뜻은 도전받을 수 없음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극적으로 그 두 제사장을 철저하게 막으셨는지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레위기 10장 3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이 말씀은 제사장으로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듯합니다. “나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섬기는 사람은 나를 최대로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모형을 변경할 권리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함

하나님이 다른 한 가지를 더 말씀하셨습니다.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3절). 하나님은 예배자들이 그의 거룩한 신성에 영광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씀과 이 직전의 말씀은 히브리어에서 명령형입니다. 그날 하나님이 성막 앞에 모인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그 두 제사장을 그대로 두셨다면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법을 짓밟고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장차 그 백성의 예배에 하나님이 관여할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아론이 애도할 수 없었음

두 아들의 죽음을 아론이 애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6절).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친 재난을 슬퍼하는 외적인 표시입니다. 그것을 금한 이유는 아론이 그날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아무 이견이 없음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온전히 동의해야 합니다. 아론은 그의 두 아들을 벌하신 하나님에 대한 반감으로 그의 두건을 벗어 던질 수 없었습니다. 어떤 마음의 반감도 아론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아론이 행한 다른 의식
속죄제를 먹지 않고 불사름

그날 또 다른 의식의 위반이 있었습니다. 레위기 10장 16절을 보면 모세가 속죄제의 동물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희생제물의 피를 대속을 위해 성소로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몸을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제로 성막 뜰에서 제사장이 먹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희생제물의 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희생 제도의 의식을 위반하여 그 동물의 몸을 진영 밖으로 가져가 불살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시에 대한 위반이었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해명을 요구함

모세는 노여웠습니다. 어쩌면 두려웠을 것입니다. 아론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이 속죄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냐? ..... 그 피는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는 것이었으니 그 제물은 너희가 내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을 것이니라” (17-18절).

아론의 해명

아론이 해명했습니다.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19절). 아론은 아들들의 죄에 책임을 느꼈습니다. 제대도 두 아들을 감독하지 못해 하나님이 벌을 내리셨다고 느꼈습니다. 아들들의 행동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19절에서 아론이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 내가 속죄 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그는 하나님이 아론의 집에 진노하셨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론은 하나님이 성막에서 아론을 위해 축제를 준비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아론의 해명은 아마 이런 뜻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내일이나 다음 주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론의 논리

성막 뜰에서 희생의 몸을 먹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집인 성막에서 베푸시는 것으로 하나님과 제사장 간의 축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내가 속죄 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19-20절). 아론의 행동에 대한 그 해명은 나답과 아비후의 행동과는 전적으로 달랐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론이 당시에 왜 그렇게 극도로 주의를 기울였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두 아들이 죽은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날 아론이 축제에 참여하리라고 하나님이 기대하신다고 아론은 생각하지 않은 듯합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죄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법을 심각하게 왜곡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처럼 엄하고 엄숙한 방법으로 관여하신 것은 지극히 정당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배울 교훈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