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의 목적
히브리어로 고르반은 소제를 정의하는 단어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단어는 “하나님께 드린 바 됨”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마가복음 7장 11절에 이 단어의 뜻이 나옵니다.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구약에 이와 같은 예물의 몇 가지 예가 나옵니다. 이것은 예물을 받는 자의 존귀함을 인정하고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리는 자와 받는 자 간의 친밀한 관계를 증진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32장 13절을 보면 야곱이 에서에게 예물을 보내는데 그것은 에서의 호의를 입기 위해서였습니다. 창세기 43장 11절에는 12지파의 조상인 이스라엘이 당시 애굽을 다스리던 요셉에게 예물을 보내는데 그것이 고르반입니다. 예물을 받는 대상의 존귀함에 대한 이런 인식은 사무엘하 8장 2절에도 나옵니다. 그 예물은 하나님의 존귀하심에 대한 인식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함과 공급하심에 대한 깊은 감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나는 첫 열매를 이스라엘에 항상 요구하셨습니다. 첫 열매는 그 땅과 짐승으로부터 난 것이라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의 희생입니다. 번제에서 히브리인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면서 “저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소제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히브리인이 번제에서 “나의 모든 것”을, 소제에서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릴 때 더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두 희생 모두 히브리인이 자신을 남김없이 온전하게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드림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바치기를 바라신다는 점이 이 두 희생에 나타납니다.
소제와 번제의 차이점
번제와 소제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두 희생 모두 번제단에서 불에 살라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것이지만, 몇 가지 점에서 각기 독특한 점이 있었습니다. 번제에서는 생명이 드려졌지만, 소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번제에서는 속죄를 위한 피 흘림이 있었지만, 소제에서는 피 흘림이나 생명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소제에서는 죄의 고백도 없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입니다. 이 희생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는 개념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소제 의식이 그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이 희생에서 곡물은 원래의 형태나 날것으로 드리지 않고 가공된 형태로만 드렸습니다. 바치기 전에 최소한 가루로 만들거나 구워야 했습니다. 히브리인은 일반적으로 가루를 케이크(떡)로 가공하고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제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번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제도 제단 위에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연기가 되어 하나님께 올라가는 향이 되었으므로 이는 예배의 행위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가장 순수한 예배 형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번제에는 이차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소제에는 이차적인 목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제의 단 한 가지 본래 목적은 자신의 모든 것을 성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이었습니다.
소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성별된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찬송과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존귀를 인식하고 매일 남김없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적인 삶과 매일의 삶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인 사람의 모든 삶 곧 몸과 마음과 영혼의 삶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몸과 영혼의 모든 자원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경건한 ‘고르반’(하나님께 드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바울은 일요일(주일)의 삶과 평일의 삶에 구분이 없음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신명기 26장에 이 희생의 배경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초기 역사부터 설명을 시작하는데, 그들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거기서 노예가 되었지만 큰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후에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이 그들의 감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이 곡식을 추수할 때 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가져왔습니다.
이 희생 제사에서 히브리인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신명기 26:5-11)
이 희생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뿐만 아니라 그 땅의 풍성함까지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의 표현임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젖과 꿀”에서 수확의 첫 열매를 가져다가 여호와께 찬양의 표현으로 드렸습니다.
소제 희생(가루)의 분량
소제에 바치는 곡식의 분량은 추수한 모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레위기 2장 2절에 “기념물”이라고 부르는 “10분의 1 에바”만 바쳤습니다. 히브리 도량형으로 이것은 가루 약 3쿼트(3.5 리터)입니다. 이것은 성인이 하루 필요한 음식의 양입니다. 주님은 사람과 동물과 추수의 첫 열매를 항상 요구하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 16절에서 히브리인이 기억하고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기억해야 할 것을 언급했습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 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이것은 제단 위에 바친 것이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특별합니다.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바친 것이고 거룩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부분이 거룩하지 않거나 사람의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바친 바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모든 자원은 하나님의 법에 맞게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소제의 재료 - 유향
이 희생에 요구되는 몇 가지 재료가 있었습니다. 그 첫째는 향이었습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 향은 항상 기도의 상징이었습니다. 히브리인이 추수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신명기 26장의 명령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히브리인은 그들의 영원한 감사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향을 더해야 했습니다.
시편 141편 1-2절에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나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께 올라가는 그 향기로운 냄새는 감사함으로 나오는 헌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녁 제사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번제를 뜻합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번제는 역시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제와 함께 드려졌습니다.
출애굽기 30장 8절에서 하나님은 레위 제사장들에게 성막에서 매일 여호와 하나님께 거국적인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 10절에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가 기도 시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향을 드리는 것을 봅니다. 계시록 5장 8절에서 향이 기도의 상징임을 확증해 줍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 곧 스물여덟 존재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서서 “각기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들고” 모두 합쳐 최소한 56개의 금 대접을 들고 있습니다. 요한은 향이 든 접시가 “성도들의 기도”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8장 3절에서 한 천사가 나오는데 그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이 더해진 많은 향을 받았습니다.
56개의 접시에 더해진 “많은 향”은 아마도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을 위해 드리는 중재의 기도를 상징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중재 기도를 나타내는 향이 든 56개의 접시와 “많은 향”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두 쏟아집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와 함께 그들의 찬양과 탄원에 동참한다는 상징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고 그의 몸인 교회가 그의 중재 기도로 하나가 될 때 땅 위에서는 즉시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백성의 기도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심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물은 그것이 주일 아침에 드리는 연보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드리는 선물이든 깊은 감사에서 우러나와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저에게 하나님의 그 선물에 감사하는 기회를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기름은 모든 희생에 들어가야 한다
소제에 더하는 두 번째 재료는 기름이었습니다. 아마도 감람유나 다른 채소에서 짠 기름이었을 것입니다. 신구약에서 기름은 항상 성별의 상징이었습니다. 번제에서는 희생제물 전체를 하나님께 성별하는 마지막 단계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제 의식에서도 기름을 더하는 것 곧 기름을 붓는 상징이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거룩한 직임을 위임받는 사람은 항상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 제사장,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들이 거룩한 직책을 맡도록 성별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는 것도 거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교제를 성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시편 133편 1-3절 말씀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레위기 8장과 9장에서는 모세가 아론과 그 자손을 제사장의 직임으로 성별할 때의 의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많은 양의 기름(약 3 쿼트)을 아론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것을 성별의 기름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론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특별히 헌신 되었음을 나타내주었습니다. 히브리서 1장 8-9절은 시편 40편 6절의 인용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여기서 “즐거움의 기름”은 하나님의 기쁨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기능을 수행할 때 항상 여호와 하나님께 성별 되었음을 나타내줍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은 소제에 기름을 더함으로 성별의 재료를 추가했습니다.
“언약의" 소금
소제에 더하는 세 번째 재료는 소금이었습니다. 신구약에서 소금은 항상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향이 기도의 상징이고 기름이 성별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소금은 항상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은 언약의 관계가 성립된 것, 언약과 그 갱신의 관계에 있음을 확증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번제에서 제물의 가운데를 잘라 언약을 새롭게 하듯이 소제에서 소금은 언약의 갱신을 나타내기 위해 더해졌습니다.
레위기 2장 13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소금은 이것이 두 당사자 간에 맺는 언약의 상징임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개념을 보여주는 다른 구절이 있습니다. 민수기 18장 19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레위족속은 제단에서 그들의 분깃을 취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들은 희생으로 드리는 동물을 취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분깃을 취할 것임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레위족속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땅을 분배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에서 그들의 분깃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소금 언약”입니다.
역대하 13장 5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소제는 이미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의 희생이므로 그 언약의 갱신과 그 확증으로 소금이 더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연보를 드릴 때 그들은 마음속에서 이 세 가지 재료를 영적으로 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의 향이어야 하고, 하나님께 성별하는 기름을 더해야 하고, 그 예물에 언약의 책임이 있음을 나타내는 소금을 더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 49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여기 나오는 불은 레위기 2장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불은 사람의 찬양과 감사의 향기로운 희생을 성별케 하는 곳인 제단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의 법을 제정하셨고 그가 제단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으므로 우리 모두에게도 이와 같은 언약의 헌신을 주 하나님께 드리라고 요구하십니다. 물론 신약교회에 육적인 제단은 없지만, 히브리 희생을 통해 그것을 상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50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헬라어 원문에는 더 직접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너희가 무엇으로 맛을 내겠느냐?”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그 언약을 잃는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될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의 예물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이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을 지키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언약일 뿐입니다.
소제에서 제외된 재료
세 가지 재료가 소제에 더해진 것처럼 소제에 제외된 두 재료가 있었습니다. 그 첫째는 누룩이고 두 번째는 꿀이었습니다. 향이 기도를 상징하고 기름이 성별을 상징하며 소금이 언약을 상징하지만, 누룩은 그 특징상 부패를 상징했습니다. 꿀 역시 발효의 재료이므로 소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상 악한 재료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레위기 2장 12절을 보면 그것을 첫 열매로 가져오라고 명령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소제에서 제외된 것은 단지 그 상징성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유월절에서 그들은 집에 있는 모든 누룩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애굽의 부도덕과 우상숭배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장 6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누가복음 12장 1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누룩을 그들의 “외식(위선)”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경건한척하는 바리새인에 대해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매우 경건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회칠한 무덤 같아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죽은 사람의 뼈가 가득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6-8절에서 사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 희생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합니다. 그래야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 말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그리스도인의 축제를 지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9절에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이것은 적은 누룩이 전체 덩어리에 번진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예수님이 드린 첫 열매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첫 열매
바울은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로운)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렇듯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의 예물입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은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첫 열매가 된 사람들입니다. 계시록 14장 4절에 144,000명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요한은 이 말씀을 덧붙입니다.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유다서 1장 24절에서 유다는 예수님을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 모든 성경 구절은 구약 히브리인의 소제에 나오는 표징의 성취가 예수님이심을 확증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제
그리스도인은 육적인 소제가 아니라 영적인 소제를 드립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은 우리가 수고로 얻은 첫 열매인데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재정적인 예물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립보서 4:18). 이 구절에서 바울은 향기로운 냄새의 희생 개념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와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이처럼 “첫 열매의 예물”은 찬양, 고백, 선을 행함과 나눠주기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과 9절은 구약의 소제에 대한 표징의 성취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확인해주는 구절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성전에서 섬기는 “거룩한 성전”이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영적 희생”을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여기서 “받으실만한 (희생) 제사”는 그것이 향기로운 냄새임을 말해줍니다.
바울이 로마서 15장 15-16절에 사용한 용어는 희생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나오는 헬라어 “일꾼”이라는 단어는 “전례를 위한 섬김”을 뜻합니다. 헬라어에서 전례는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의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에게 “전례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헬라어에서 “제사장의 직분”은 복음에 대한 제사장적 행위를 의미하는 동사적인 행동입니다. 바울은 상징적인 제단에서 하나님 복음의 선물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제사장 역할을 한 것입니다.
바울은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을 상징적인 면에서 똑같은 제단 위에서 그들을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냄새의) 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 전도자인 자신을 첫째로 하나님의 선물을 사람에게 전하는 ‘제사장’으로 보았고, 둘째로 하나님께 개종한 사람들을 “첫 열매”의 희생으로 드리는 제사장으로 자신을 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구절은 레위기에 나오는 용어와 일치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드림”으로 (레위기에 나오는 모든 희생의 첫 번째 단계) 시작합니다. 그 예배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 있고 거룩하고 받으실만한” 예물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구약 소제에 해당하는 신약의 제사를 드릴 자격을 갖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것으로 그 예배자는 재정(연보)을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정(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합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선한 행위를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잃어버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 행위를 통해 영원 구원을 위한 그의 열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히브리 소제와 관련된 이 모든 표징은 먼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고 다음에는 그의 백성을 통해 성취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