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시는 복

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정한대로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후에 그 가운데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돌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누가복음 17:17-18)
우리 대부분도 나머지 아홉 사람처럼 고마워할 줄 모릅니다. 복을 받아도 우리가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하나님의 은혜를 고마워할 줄 모릅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적 복과 영적인 복을 깨닫고 고마워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질적 복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받고 있습니다. 이 점을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태복음 5:45) 의식주를 비롯해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서 1:17)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한 방법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여기서 주님은 세상 일보다 하나님을 우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적 복

가장 큰 복은 물질의 복이 아니라 영적 복입니다. 다음은 바울의 선언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에베소서 1:3) 이런 복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 복은 그리스도인의 것이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준 약속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이와 같은 복을 갖고 계신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26-27) 그럼,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영적인 복을 몇 가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죄 용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영적 죽음 곧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은 오로지 죄에 대한 용서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7)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을 때 그의 옛 죄가 용서받았음을 압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미끄러질 때도 있지만 기도를 통해 하늘 아버지의 용서를 간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과거의 죄가 더 이상 양심을 짓누르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죄 용서 받았음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

정말 귀중하지만 너무나 자주 간과하는 복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성령이 그리스도인 안에 계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6:19)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3:16)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 8:11) 다른 영적인 복이 그렇듯이 내주하시는 성령도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 이루어집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사도행전 2:38-39) 죄 용서가 복음에 순종할 때 그 결과로 이루어지듯이 이 성경구절을 보면 우리가 복음에 순종하여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선물도 동시에 이루어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보면 성령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기적을 행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을 통해 복을 주십니다. 다음 말씀을 보십시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에베소서 3:16)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바울은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을 그리스도를 통해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받았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면 어려운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물질적 필요를 특별한 방법으로 돌보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약속은 그리스도인의 안녕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이 약속을 받는 이는 다름아닌 죄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위 구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한 점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항상 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안녕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 슬픔과 고통이 가득할지라도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궁극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비록 우리가 당시에는 깨닫지 못할지라도 우리 하늘 아버지의 역사하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 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하노라.” (히브리서 13:5-6)

징계

우리는 주님의 징계를 복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브리서 12:5-7, 9-11) 때로는 고난이 우리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이루기도 합니다. 징계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듯이 때로는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가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야고보서 4:8)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질 때 우리 하늘 아버지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그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교제는 양쪽의 동참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드릴 때 이루어집니다. 예배의 각 요소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만찬이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의 좋은 예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고린도전서 10:16) 주의 만찬에서 떡과 잔에 참여할 때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기도를 들으신다는 믿음으로 그 앞에 우리 마음을 다 내놓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서 5:16) 한편,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공부할 때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면서 우리와 교제를 나누십니다.

영원한 집

그리스도인이 받는 복의 절정은 영원한 집입니다. 성경에는 죽음 후의 영혼의 삶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3) 바울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린도후서 5:1) 영생에 대한 소망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인생의 역경을 이겨내게 해 주는 큰 힘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히브리서 6:19)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적인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영원한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도 확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