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우리는 거듭남이 영적인 것이며,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열매 맺는 가지

포도나무의 비유(요한복음 15:1-16)에서 예수께서는 그가 포도나무이고 그의 제자인 우리는 가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비유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도 나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5:2)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엄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인데 이것을 “성령의 열매” 혹은 “의의 열매”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이들의 영적 특징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영적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전투에 비유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디모데전서 6:12) 이 전투에 임하는 그리스도인의 무장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14-17) 여기서 등을 제외하고 완전히 무장한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등에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싸움에는 후퇴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전진하려면 마귀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완전무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주에 비교하기도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1-2)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최선을 다해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경주에 이겨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장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베드로후서 3:18) 히브리서 5:11부터 6:2를 보면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저자는 새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어린아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유를 마시지만 영적으로 성숙하면서 단단한 음식을 먹고 더 이상 우유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매일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는 사람은 난쟁이가 되고 위축되어 영원한 생명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날마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이루는 영적 성장입니다. 

성령의 열매란?

갈라디아 5:22-23을 통해 이미 본대로 성령의 열매에는 아홉 가지가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5-7에도 이와 거의 비슷한 덕목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위의 두 곳에 나타난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맺어야 할 열매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믿음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열거하면서 베드로는 그것들이 믿음 위에 세워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바울은 믿음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사람이 믿음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매일같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성장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점에서 믿음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믿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어린아이 같은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해 주며, 우리 삶에 파고 드는 의심과 두려움을 사라지게 합니다.

화평

마음의 평화는 믿음과 함께 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염려를 극복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을 사라지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 속의 평화를 가로막는 의심과 두려움과 걱정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워집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4)

희락(기쁨)

평화와 함께 오는 것이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기뻐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4)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로마서 12:12) “항상 기뻐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6)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13)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 우리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멍에는 쉽고 그의 짐은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섬기는 일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양선(미덕)

미덕은 도덕적 선 곧 항상 올바른 일을 하려는 용기 있는 결단입니다. “성실”도 미덕의 한 부분입니다. 이런 덕을 가진 사람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신념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버리지 않습니다.

지식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인 지식은 유형적인 세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함으로 나오는 지식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2:15) 이 구절에 나오는 “힘쓰라.”를 영어성경에서는 “최선을 다하라.” 혹은 “부지런히 힘쓰라.” 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힘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처럼 성경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는 주위에 성경책이 없어 영적 지식을 얻지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려는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알려고 해도 이와 같은 영적 지식을 얻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절제

절제를 술의 중독에서 자신을 멀리하는 것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성경적 의미는 자신에 대한 제어입니다. 이 성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몸을 항상 제어합니다. 침착성을 잃지 않고, 어떤 습관이라도 자신을 주관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라.” 하고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27) 이렇듯 절제는 자신의 약함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인내(오래 참음)

인내도 절제의 한 형태입니다. 이것은 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얻으려는 것을 때로는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조급해 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여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 깨닫게 되면, 우리도 다른 사람에 대해 오래 참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온유

온유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성격이 부드럽고, 고통을 인내하며 오래 참음”으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온유에는 부드러운 성품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온유한 사람도 그리스도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참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상처를 입혀도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형제 우애

성령의 열매 가운데는 분별이 모호한 것이 더러 있습니다. 한 열매가 다른 열매를 낳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온유는 형제 우애를 낳습니다. 형제 우애에 대한 참된 기초는 황금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만약 우리가 남한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해준다면 형제 우애에 대한 참된 의미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경건

“경건”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원래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경애나 존경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를 섬기며 헌신하는 것을 경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경건은 말로만 하는 것이나 형식적인 예배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디모데후서 3:5) 하나님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섬김을 원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대로 예배 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참된 경배가 없는 형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사랑

성경에서 사랑보다 더 강조하는 성령의 열매는 없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열거한 일곱 덕목 중 으뜸가는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요한이 쓴 서신에 이 단어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그를 “사랑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도록 세상에 보내신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린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일서 4:7,1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계명을 지키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우리가 인류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