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서 의롭다 함 (칭의)
어느 죄수가 배심원의 평결을 받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배심원의 대표가 일어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피고가 무죄라고 평결합니다.” 이것은 그에게 아무 피의 사실이 없다는 뜻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라는 무죄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의롭게 하다.” 혹은 “죄가 없다.”라는 표현은 신약성경 특히 로마서에 자주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이 그 죄로부터 사면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처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을 가리켜 “의롭다 함(칭의)”라고 부릅니다. 본 과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는지, 특별히 이 점을 사람을 사면하는 것과 관련해 살펴보겠습니다.
의롭게 한다는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재판장이시고, 그의 말씀이 법이며, 이 법을 위배하는 것이 우리의 죄입니다. 이론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의롭게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로, 죄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실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그에게 죄가 없거나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죄과가 증명되지 않은 순결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듯이 그런 사람은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면 아무도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순결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사람이 죄 없이 완전한 삶을 살려면 단 한번도 불친절한 말을 해서는 안되고 잘못된 행동이나 나쁜 생각을 가져도 안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죄 용서도 필요 없고 그리스도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으려면 자신의 순진함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두 번째 방법은 당신이 스스로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자신의 선한 행동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의 값으로 피를 흘러주셨기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의롭다 하려면 죄에 대한 형벌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이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며 죄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의롭다 함(칭의)을 받으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대통령의 사면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사면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법에 의하면 사면을 받기 위해서는 사면 받을 사람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지만, 그의 희생이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그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그와 같은 사람을 의롭다 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과 심지어 그의 제자들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그와 같은 생각이 틀렸음을 지적했습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받으려면 완전함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20)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만약 어떤 사람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다면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바울은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음을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라고 바울이 말한 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의 가장 큰 주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 바울은 아브라함이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약속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그것이(그의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로마서 4:22) 이렇듯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지 그의 행위나 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는 점에 있어서 야고보와 바울의 주장이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다음은 야고보가 한 말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서 2:21-24) 여기서 야고보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우리가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똑 같은 아브라함과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도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로마서 4:1-3)
그렇다면 두 사람의 결론이 서로 상충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울과 야고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얻는 유익을 지적하면서 아무도 자신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한편, 야고보는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이 주어진다는 점을 반박하면서 구원받는 믿음은 행함이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가 “믿음만으로(by faith only)”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야고보서 2:24) 왜냐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과 야고보가 말한 행위가 서로 다른 두 가지 행위라는 점을 이해하면 칭의(의롭게 함)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칭의에 대한 주제를 연구할 때 일반적인 어려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 때문에 다른 모든 요소는 제외된다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는데 있어 믿음 외에 다른 어떤 요소도 배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집 짓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집을 짓습니까? 건축설계자일까요? 맞습니다. 그가 설계를 해야 집을 짓습니다. 건축 계약자일까요? 맞습니다. 그가 집 짓는 것을 지시합니다. 건축 인부일까요? 그것도 맞습니다. 인부가 있어서 실제로 건축이 진행됩니다. 집 주인일까요? 그것도 맞습니다. 그가 있어야 집을 짓는데 필요한 경비를 지불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집을 짓는데 있어 각기 자신의 역할을 합니다. 이들이 다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집을 건축 계약자만으로 혹은 인부만으로 지었다고 말하면 틀린 것입니다.
똑 같은 원리가 죄로부터 의롭다 함(칭의)을 받는데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3:7)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로마서 5:9)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 우리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서 2:24)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만으로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그리스도의 피가 결코 죄를 위한 대가로 흘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없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행위가 공허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죽은 것이고, 그 믿음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는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교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과정 속에 포함된 우리의 행동을 부정할 뿐 아니라 구원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피의 역할까지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분명히 잘못된 주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데 있어 믿음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원을 얻는 믿음의 성경적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의롭게 하는 믿음은 신뢰하는 믿음이며 여기에는 순종이 따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기는 하지만 그를 의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한복음 12:42-43) 다음 사실도 잊지 마십시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서 2:19) 방금 언급한 두 구절에 나오는 유대 지도자들과 귀신들(마귀들)에게도 믿음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1장 5절과 16장 26절에서 바울은 “믿음의 순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나오는 것은 순종이며, 이것이 없으면 믿음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도 믿음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구원받는 믿음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구약시대에 믿음으로 위대한 일을 이룬 믿음의 영웅들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노아는 방주를 예비했으며,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들을 행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주님이 우리를 받아주지 않으실 것이고,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의롭다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를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의롭다 함을 받는데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행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는 행위가 아닙니다. 사람이 세례 받을 때 그는 수동적이지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사람이 세례 받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세례가 그의 믿음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속하게 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을 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이 세례를 받도록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례 받기 전까지는 그에게 순종하지 못했으므로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