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란 무엇인가?

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겠습니까? 암, 질병, 범죄, 전쟁일까요? 아닙니다. 이 세상의 가장 큰 재앙은 죄입니다. 죄는 세상의 어떤 고통보다 더 큰 시련을 가져다 주는 근본원인입니다. 이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정복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영원한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죄란 무엇일까요? 요한은 “죄는 불법이라.” 했습니다. (요한일서 3:4)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요한은 “모든 불의가 죄”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17) 그리스어로 “죄”는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과녁인데 그 과녁을 빗나갈 때 우리가 죄를 짓습니다.
죄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살펴볼 죄는 다음 네 가지입니다. (1) 부도덕 (2) 태만 (3)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죄 (4) 하나님께 불순종 하는 죄

부도덕의 죄

비록 사회에서는 용인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죄가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것을 가늠할 때 사람의 의견보다는 성경의 가르침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신약은 우리가 하면 안 되는 것들을 나열해 놓은 목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우리가 마땅히 생활에 적용하고 매일의 삶 가운데서 우리의 행동을 좌우할 원리들이 들어 있습니다. 죄 가운데는 명시적으로 정죄하는 것이 있고, 어떤 죄는 원리상 금지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정죄하는 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성경 구절에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5:19-21; 에베소서 4:25-32; 고린도전서 5:11; 6:9-10; 골로새서 3:5-9; 디모데후서 3:1-5; 로마서 1:19-31. 이 구절에서 부도덕의 죄는 일반적으로 우리 마음 속으로부터 나오는 다음 일반적인 세 가지 행태를 띠고 있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복음 12:34)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마태복음 15:18-19) 때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행위만 정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행위를 일으키는 마음의 생각이 죄라는 점을 보여주십니다. 다음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8) 간음은 행위이지만 그 행위를 일으키는 것은 마음의 음욕입니다. 다음 말씀도 보십시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요한일서 3:15) 때로 미움이 살인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미움이라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살인이라는 행위가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훔치는 행위도 종종 탐욕 때문에 일어납니다. 남을 비방하는 죄도 종종 시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 마음과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행위가 모두 죄입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습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의 물리적인 결과는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행위와는 다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살인하기 보다는 미워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를 비방하는 사람보다는 마음 속으로 시기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는 않지만 그 마음을 품고 있는 그 자신을 해치고, 행위로 짓는 죄는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습니다. 이 둘의 결과는 다르지만 죄라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마음으로 짓는 몇 가지 죄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이 자주 정죄하는 것 가운데 욕심이 있습니다. 욕심은 어떤 것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욕구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이 갖고 있는 차를 욕심 낸다면 그것은 욕망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그 차를 좋아하는 것과 옳지 않은 방법으로 그 차를 가지려고 하는 욕망은 다릅니다. 마음으로 짓는 또 다른 죄로 정욕을 일으키는 감각적인 욕구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오염되도록 방치하면 안됩니다. 마음으로 짓는 다른 죄로는 시기, 원한, 분노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입으로 죄를 짓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 12:36-37)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는 말을 심각하게 되돌아보게 해 줍니다. 말로 짓는 죄로는 욕설, 비방, 모욕, 거짓말, 자랑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죄를 짓는 혀에 대해 야고보가 한 말입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야고보서 3:8) 혀는 길들여지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은 늘 조심함으로 그 혀를 제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말로 하는 몇 가지 죄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맹세를 금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태복음 5:34-37) 여기서 예수께서 법정 맹세까지 금지하셨는지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신성모독에 대한 금지를 하셨다는 점은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말할 때 가볍게 혹은 경솔하게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영어권에서 쓰는 속어 가운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는 예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혹은 “놈” 이라는 뜻을 가진 “지(Gee)”라는 속어는 “예수(Jesus)”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이쿠!” 혹은 “저런!”이라는 뜻을 “가쉬(gosh)”와 “골리(golly)” 라는 속어도 “하나님(God)”을 대체한 말입니다. 이런 속어들은 모욕적인 언사를 귀에 거슬리지 않게 혹은 은근한 표현으로 대체한 완곡어법입니다. 또 다른 것으로는 “악마(devil)”에서 나온 완곡한 표현인 “제기랄(deuce)”, “지옥(hell)”에 대한 완곡한 표현인 “핵(heck)”, “빌어먹을(damn)”에 대한 완곡한 표현인 저주라는 뜻을 가진 “단(darn)”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말은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하므로 이와 같은 단어들을 우리가 쓰는 말에서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주 강하게 정죄하는 죄 가운데 거짓말이 있습니다.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요한계시록 1:8) “악의 없는 거짓말”도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거짓말의 희고 검은 것에 대한 구분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선한 의도를 갖고 한 행동이라도 그것이 정당화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로마서 3:8)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말해야 할 필요는 없으므로 우리의 말 가운데 금지되는 것이 있고 악의 없는 거짓말이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험담이나 뜬소문을 퍼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디모데전서 5:13) 사람들이 뜬 소문을 퍼트리는 이유가 대개는 남을 비방하거나 새로운 것을 말하므로 우쭐거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이 당사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욕설이나 비방도 불필요한 심한 언사나 독설이라는 점에서 서로 비슷합니다. 물론 때로는 상대방을 나무랄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욕설이나 비방하면서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욕설이나 비방 때문에 가족의 구성원이 불화하고 상처 받는 경우가 너무나 자주 일어납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우리 말이 친절하게 표출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죄에는 행위가 따릅니다. 이 가운데는 절도, 살인이 있는데 이와 같은 행위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아니라 사회로부터도 정죄 당하는 죄입니다. 불화, 내분, 속임수 등은 그렇게 심하게 정죄 당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것들은 죄를 품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결과입니다. 그 가운데는 절제가 부족해 생기는 것도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10)  
구체적으로 명시된 죄는 아니지만 성경의 원리에 따라 정죄 당하는 죄들이 많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꾸준히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도박은 성경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성경의 원리에 따르면 그것은 죄입니다. 도박은 이기심을 자극하며 결과적으로 욕심을 낳습니다. 절도 또한 그 원인을 살펴보면 살인과 같은 마음의 동기에서 나옵니다. 그 행위는 서로 다르지만 죄의 결과는 같습니다. 둘 다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혹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 가진 것을 뺏길 때까지 싸우기 때문입니다. 둘의 다른 점이 있다면 정도의 차이지 근본 원리의 차이는 없습니다. 춤도 성경의 원리에 따르면 정죄되는 것이 많습니다. 춤의 표현 가운데 상대나 상대와 자신의 욕정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욕정 때문에 간음의 행동이 따르는 죄짓는 결과를 가져오든 그렇지 않든 어떤 춤이 만약 악한 생각을 일으키게 만든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태만의 죄

우리가 짓는 죄 가운데는 옳지 않은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죄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태만의 죄도 있습니다. 다음은 야고보가 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4:17)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대 심판의 장면을 보면 불의한 자들이 선한 일을 하지 않아 정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병문안 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찾아가지 않았다면 죄짓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 도와주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도 돕지 않는다면 죄짓는 것입니다. 공부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려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옳지 않은 일들을 단순히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옳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죄

각 그리스도인은 형제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바울이 고기 먹는 것을 예로 들어 이점을 강조했습니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로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고린도전서 8:12-13) 바울은 여기서 고기 먹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내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한다면 그와 같은 내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잃어버리게 하기 보다는 고기 먹는 것을 영원히 단념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이 살던 시대처럼 우상에게 바친 후 나오는 고기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이 원리를 다른 곳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각 그리스도인은 다른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우리가 나쁜 것을 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습관이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건 내 일일 뿐이야.” 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로마서 14:16) 다음 과에서는 불순종의 죄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