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란 무엇인가?
요한은 “죄는 불법”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요일 3:4). 범죄는 세상의 법을 어기는 것이며, 행악이란 도덕적 표준과 사람의 관습을 어기는 것이지만 죄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란 문자적으로 “표적을 빗나가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표적이므로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하지 못할 때마다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 간음, 술 취함 등은 성경에서 명백하게 지적하는 죄이지만, 다른 죄들 이를테면 도박 등은 성경에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에 비춰볼 때 이것은 죄입니다. 요한은 육신으로 좇아 난 “모든 불의가 죄”라고 하였습니다(요일 5:17).
태만(怠慢)도 성경은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들은 병자를 문병할 의무가 있는데(마 25:36) 찾아가 보아야 할 병자가 있는데도 문병하지 않는다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을 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가 명령하신 것은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도덕적인 원칙이 포함되지 않을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아말렉 사람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 멸하라”하고 명령하셨지만, 사울 왕은 그가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몇 동물과 아말렉 왕을 살려준 적이 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잘못한 것은 없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으므로 그는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주님의 만찬에 쓰일 재료로 떡과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사용할 것을 지시하셨는데, 우리가 닭튀김이나 오렌지 주스 등으로 대신한다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변경시키고 그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가 등급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작은 선의의 거짓말”은 용서해 주고 “큰 거짓말”만 정죄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라고 가르칩니다(계 21:8).

물론 다른 죄보다 더 큰 결과를 가져오는 죄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이 나를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워하는 편을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교훈합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죄의 결과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그날 그가 죄를 지은 결과로 아담은 오랜 후에 육체적으로 죽었으며, 그 후부터 그의 후손들도 육체적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아담이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날 때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영적 죽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라면 육적인 죽음은 몸으로부터 영혼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죽음이 곧 영원한 소멸은 아닙니다.
영적 죽음은 모두 죄의 결과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로마서 8장 13절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람은 모두 육체적으로 죽으므로 이 구절에서 육체적인 죽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런 우리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 2:13).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비록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다 하더라도 육체가 죽은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 영적 죽음 곧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계 21:8).
죄는 유전되는가?
우리가 아담의 죄와 우리 부모의 죄를 유전 받았을까요? 아니면 우리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만 받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2).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여기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죄 때문이지 우리 조상들의 잘못 때문이 아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날 때부터 아담과 부모의 죄를 유전 받은 죄인이라고 하는 교리를 “원죄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서 자신이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유아라 할지라도 이 교리에 따르면 죄인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원죄” 혹은 그와 같은 개념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히려 그 반대의 사실을 말합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20). 그러므로 갓난아기는 그 부모의 죄에 대한 책임이 없습니다.
원죄의 교리는 “죄는 불법(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행동)”이라는 가르침과 상반됩니다 (요일 3:4). 이것은 유전되는 특성이 아닙니다. 요리하는 방법이나 자동차 운전 방법 등이 유전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특성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갓난아기가 죄인으로 태어났다면,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로 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서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린아이들이 영원한 형벌을 받을 죄인이라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절대로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원죄를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깁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손이고(행 17:29), 우리 영혼은 하나님이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에(창 2:7), 날 때부터 사람이 죄를 갖고 태어난다면, 그 죄의 기원을 하나님께로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모든 성경 구절을 살펴보고서도 우리가 온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원죄를 유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럼, 육신의 부모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물려받았을까요? 죄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죄를 짓는 인간의 연약성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아담의 죄나 우리 부모의 죄를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죄가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하늘에서 내리는 새하얀 눈송이처럼 순결한 것입니다.